르노의 블로그
by 르노 이글루스 피플
207. 수
최양일 감독 / 지진희, 강성연, 문성근 주연
(2007. 6)


"제가 얼마전에 사람을 하나 죽였는데 말입니다. 대갈통에 정확하게 한방, 분명히 자갈을 냈단 말입니다. 근데 그놈이 버젖이 살아났단 말입니다. 그새 대가리 빵꾸도 싹 때우고. 그렇다면 전 사람을.. 죽인거란 말입니까, 안죽인거란 말입니까?"

하드보일드는 행동에 의해 묘사되고 표현된다. 박찬욱 감독은 대사조차도 성대의 행동일 뿐이라고 썼다. 최양일 감독이 한국에서 만든 첫번째 영화인 <수>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영화다. 이 역시 대사는 생략되어 있거나 왜곡된 형태(문성근의 기이한 목소리)로 존재하고 태수(지진희)의 행동만이 강조된다. 내러티브는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태수는 앞만 보고 달려간다. 길은 오직 하나. 그 끝에 복수가 기다리고 있다.



경찰과 암흑가가 모두 주목하는 최고의 해결사인 '수'에겐 오직 단 하나의 삶의 목표가 있다. 19년전 마약 조직의 돈을 훔친 자신 대신 붙잡혀 헤어지게된 쌍둥이 동생 태진을 만나는 것.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동생을 만나는 날, 태진은 태수의 눈 앞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한다. 태수는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인 동생 행세를 한다. 태진의 여자친구인 형사 미나(강성연)와 함께 마약 조직 보스 구양원(문성근)의 뒤를 쫓던 태수는 마침내 복수를 시작한다. 


<수>에서 친절하게 설명되어지는 부분은 오직 태진과 태수가 헤어진 사연 뿐이다. 미나가 왜 공항에서 태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태진이 구양원 일당에게 붙잡힌 이후 어떻게 성장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오직 태수의 복수를 향해 내달릴 뿐, 전력질주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들은 모두 제거해 버렸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인물들간의 관계에서 오는 정서적인 유대감과 긴장 또한 제거해 버린 것이 됐다. 미나와 태수의 관계는 모호해졌고, 구양원을 향한 복수심은 단편적이며, 태수의 정체를 뒤늦게 알게되는 남달구(이기영)의 추격 또한 긴장감이 살아나지 않는다. 따라서 관건은 관객이 태수의 지독한 복수심을 공감할 수 있느냐다. 만약 공감하지 못한다면 과격한 이 영화의 폭력 묘사를 견디기 힘들 것이다.


최양일의 <수>에는 <피와 뼈>의 기막힌 사연도, <복수는 나의 것>의 스타일도, <킬리만자로>가 보여준 패배자들의 황홀한 정서도 없다. 감독은 폭력의 극단까지 밀고 나가지만 이것은 이창동 감독이 얘기했던 '영화의 윤리'를 떠올리게 한다. 폭력의 미학적인 묘사만으로 영화는 칭송받아도 되는 것일까?

by 르노 | 2007/06/18 17:22 | 영화 일기 (한국)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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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르노's movie .. at 2007/06/18 19:11

제목 : 11. 영화는 그렇게 윤리적인 매체는 아닌 거 같다..
허문영: 이창동 영화의 주제는 변함없이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왜 영화라는 매체로 고통이라는 주제를 다루나. 이창동: 그 질문을 약간 바꿔 답하자면, 내가 느끼기에 즐거움을 다루는 것보다는 고통을 다루는 게 좀 정직하달까. 그런 저항감도 있다. 나는 이른바 시네필도 아니다. 무작정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하게 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영화만 하면......more

Commented by chokey at 2007/06/19 00:06
최양일감독이 시나리오를 너무 길게쓴게 문제라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가 시나리오를 줄이는 과정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생긴게 아닐까해서요. 그래도 그런 폭력의 미학도 오래간만에 느껴보는듯 했습니다.
Commented by 르노 at 2007/06/19 09:57
chokey / 시나리오를 여러명이 쓰다보니 서로 한국어와 일본어로 번역해 읽는 과정에서 소통의 문제도 조금 있었던 거 같아요. 평론가 김영진씨의 글을 보니 결국 현장에서는 감독의 스타일대로 곁가지들이 많이 잘려나갔다는 군요. 무척 기대한 영화였던 만큼 아쉬움도 큰 작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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