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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기를 멈출때 썩기 시작한다 - 이명원 / 러시아 속담
반경환 박남철 사태 비판 글 中

자라기를 멈출 때 썩기 시작한다는 러시아의 속담이 있다. 시를 쓰는 행위와 시인으로서 삶 자체가, 독자 대중에게 하나의 추문으로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단지 한 시인의 문학적 파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문학 전체, 넓게 보면 우리 문학과 문학인의 미성숙을 지시하는 지표로서 기능한다. 이번 사태에 대한 문학인들의 침묵이 지속되면 될수록 우리 문학은 점점 더 썩은 냄새를 피워낼 것이다. 분노를 잃어버린 사회에서 문학인마저 그러하다면, 우리는 지금 `죽은 시인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가.


<전문>

연민과 분노가 필요한 지금

인간이 가진 소중한 품성 가운데 `연민'과 `분노'가 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연민이 표출되지 않는 사회는 불의가 판치며, 공적으로 분노를 발산해야 마땅할 행위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는 사회는 병들고 타락한다. 이 연민과 분노라는 소중한 품성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구원하기를 꿈꾸며, 사적인 구원 행위를 공적인 현실의 구원으로 확대시키기를 꿈꾸는 자가 시인이다.
시인은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고통을 발견하며, 타인의 상처를 위로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다. 시인의 분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이, 실제로는 그를 둘러싼 인간세상의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가해진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인식하는 데서 발생한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에서, 한 사람이 촛불을 지켜내는 과정이 곧 인류를 구원하는 치열한 도정으로 상징되듯이, 시인은 한 편의 시를 통해서 자기구원과 인류구원의 위대한 작업을 동시에 실현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모든 시인이 그러한 것은 아니며, 더구나 오직 시인만이 그런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삶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면죄부'로 시가 활용된다면, 그는 이미 시인의 자리에서 떠난 것이다. 물론 한 개인의 삶이 아무리 타락한 방식으로 영위되고, 또 스스로 그것을 자초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제3자가 그것에 대해 직접적인 가치판단을 내릴 권리와 의무는 없다. 또한 그것이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일 한 사람이 타인의 인격과 존엄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을 행위를 공공연히 자행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그 침해당한 사람의 인격과 존엄을 수호하고 복원시키기 위해, 그의 편에서 온몸으로 투쟁해야 한다. 그때야말로 인간다움의 표상으로서 분노가 작동될 때이다.

지난 한해 `성추행 사건'으로 문단을 벌집 쑤셔놓듯 시끄럽게 만들었던 한 남성시인이, 이번에는 한 중견 여성시인을 성적으로 모욕하고 비하하는 몇 편의 시를 창작과 비평사의 자유게시판에 올렸다. 그런가 하면, 한 평론가는 이 시인의 행위를 적극 옹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해당 여성시인은 물론 남편의 실명까지 직접 거론하면서 모욕에 동참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일어났다. 급기야 이러한 몰상식을 참지 못한 여성시인이 명예훼손으로 해당 남성시인과 평론가를 고소하기에 이름으로써 이제 이 문제는 사법적 심판에 따른 판결을 앞두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매우 복잡한 종류의 분노를 느꼈다.

첫째, 나는 문학이라는 이름을 빌려 사적인 공격성을 충족시키고, 도리어 자기문학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남성시인의 언어도단에 분노했다. 둘째, 나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남근주의적 질서가 여전히 견고할 뿐만 아니라, 이른바 지식인 사회에서는 더욱 교활한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셋째, 나는 이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마땅할 문학인들, 특히 중견 이상의 원로문인들, 그 가운데서도 남성문인들이 적극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것에 분노했다. 넷째, 나는 이 사태에 정작 온몸으로 맞서,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해야할 여성문인의 발언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저급한 가부장주의'에 분노했다.

자라기를 멈출 때 썩기 시작한다는 러시아의 속담이 있다. 시를 쓰는 행위와 시인으로서 삶 자체가, 독자 대중에게 하나의 추문으로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단지 한 시인의 문학적 파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문학 전체, 넓게 보면 우리 문학과 문학인의 미성숙을 지시하는 지표로서 기능한다. 이번 사태에 대한 문학인들의 침묵이 지속되면 될수록 우리 문학은 점점 더 썩은 냄새를 피워낼 것이다. 분노를 잃어버린 사회에서 문학인마저 그러하다면, 우리는 지금 `죽은 시인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가.

이명원/문학평론가 
by 르노 | 2019/07/11 20:37 | 댓글 & 문장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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